『국사』는 민족 대단결 혹은 민족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과 복종을 강요하기 위하여 ‘현실의 적’을 ‘절대악’으로 초역사화(‘상상된 적’)한 뒤, ‘민족 절멸의 공포’를 조직하는 서사 기법을 자주 활용하고 있다. 즉, 『국사』는 특정 시기의 역사를 서술할 때마다 ‘민족의 철천지 원수’, ‘절멸시켜야 할 적’의 존재를 명확히 설정한 뒤, 이런 원수와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과 복종, 화합과 단결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식으로 애국심이나 민족주의를 선동하고 있는데, 이런 대목에서 돋보이는‘상상 속의 적’은 역시 일본 제국주의이다. 

<국민 필수 교과과정인 국사 책에서 우리들은 일본의 참혹함과 잔인함에 대하여 배운다. 참혹한과 잔인함에 대해서만 배운다.>
일제와의 숭고한 투쟁을 통해서 민족사가 발전하고 대한민국이 수립될 수 있었다거나, 일제 때문에 근대화가 중단(지체)되고 민족 분단이 야기되었다는 식의 서술은, 조국과 민족의 대서사를 완성하는데 있어서 이런 서사 기법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 준다.
『국사』가 일본 제국주의를 어떻게 신화화하였는가를 보여 주는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무수하다. 『국사』는 ‘무자비’, ‘잔인무도’, ‘교활’, ‘광분’ 또는 ‘약탈’, ‘강탈’, ‘착취’ 등의 용어를 내키는 대로 쓰면서 일제의 악마성(민족에 대한 억압과 수탈)을 논증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이런 서술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제는 민족사 발전을 저해한 절대악으로, 그리고 민족 대단결은 당연하고도 필연적인 민족사적 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우리 머릿속의 일본인>
하지만 역사적 실재로서의 일본 제국주의를 지나치게 초역사하여, 역사 과정의 모든 부정성을 모조리 일제 탓으로 돌리는 식의 역사 서술은 여러 가지 자가당착적인 역사 인식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면, 조선 후기 이래의 ‘내재적(자생적) 근대화’가 일제 조선 지배(식민지화)로 말미암아 완전히 중단(지체)되었다는 식의 역사 인식, 혹은 ‘근대화(성)’와 ‘식민지화(성)’를 전혀 별개의 역사 과정으로 파악하는 역사 인식 등은 그 대표적인 보기라 할 수 있다. 『국사』가 ‘식민지적 근대화’나 ‘근대 주체’. 혹은 친일 세력이나 민족 개량주의 세력의 실제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던 것도 이 같은 자가당착적인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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